고려의 복식은 모두 중국 당나라 한뿌라고 말하는 조준(趙浚)

 

고려의 복식은 모두 중국 당나라 한뿌라고 말하는 조준(趙浚)





조준은 고려 말기 이성계의 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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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祖宗)의 의관(衣冠)과 예악(禮樂)은 모두 당제(唐制)를 따랐는데, 원조(元朝)에 이르러 시왕지제(時王之制)에 압박을 받아서 중화(中華)〈의 제도〉를 바꿔 오랑캐를 따르게 되었으니 상하(上下)가 분별되지 않아 민의 뜻이 안정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현릉(玄陵, 공민왕)께서는 상하의 등급이 없는 것을 분하게 여기시어 중화로써 오랑캐를 변화시키고[用夏變夷] 조종의 성대한 제도를 다시 회복하려는 큰 뜻을 세웠습니다. 명(明)[天朝]에 표문을 올려 호복(胡服)을 혁파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공민왕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상왕(上王, 우왕)께서 그 뜻을 계승하여 요청할 수 있었지만 중간에 집정(執政)이 바꿔 버렸습니다. 전하(殿下)께서 즉위하셔서 친히 중화의 제도를 따라 온 나라의 신민(臣民)과 더불어 환연히 다시 출발하였으나, 여전히 그 품제(品制)를 따르지 않으면서 유신(惟新)의 정치를 가로막는 자가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헌사에 명령하셔서 날을 정하여 입법(立法)하게 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가려내어 처리하도록 하시옵소서. 

祖宗衣冠禮樂, 悉遵唐制, 迨至元朝, 壓於時王之制, 變華從戎, 上下不辨, 民志不定. 我玄陵憤上下之無等, 赫然有志於用夏變夷, 追復祖宗之盛. 上表天朝, 請革胡服, 未幾上賓. 上王繼志得請, 中爲執政所改. 殿下卽位, 親服華制, 與一國臣民, 渙然更始, 而尙猶不順其品制, 以梗惟新之政. 願令憲司, 定日立法, 其不從令者, 一皆糾理.


현대어 번역(책사풍후가 번역) : 우리 고려의 복식 등 모든 문화는 모두 당나라 제도를 따랐는데

원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할 수 없이 원나라에 복속당해 중화의 제도를 버리고 야만스런 북방 융족의 제도를 따르게 되었으니 상하가 분별되지 않고 백성들의 뜻이 안정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공민왕께서는 상하의 등급이 없는 것을 분하게 여기시어 하(夏)나라 즉 중화의 문화로서 야만족 이(夷)를 변화시키고 조,종 임금님들의 성대한 (중화) 제도를 다시 회복하려는 큰 뜻을 세웠습니다. 이에 명나라에 표문을 올려 북방 야만족의 복식을 혁파하고 

명나라의 복식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허락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않아서 공민왕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상왕이신 우왕이 그 뜻을 계승하여 요청할 수 있었으나

중간에 집정(권신 ‘이인임’을 말하는듯)이 바꿔버렸습니다.    

이제 전하(우왕의 아들인 어린 임금 창왕(昌王))께서 즉위하셨으니 이제 친히 중화의 제도를 따라

온 나라의 신민과 더불어 환연히 다시 출발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몽골 원나라의 복식을 입기를 고집하며 유신(惟新)의 정치를 가로막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헌사에 명령하셔서 날을 정하여 입법(立法)하게 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가려내어 처리하도록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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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의 전문


조준이 『주례』에 근거해 관직제 등에 관한 시무책을 올리다

고려사 > 列傳 卷第三十一 > 諸臣 > 조준 > 조준이 『주례』에 근거해 관직제 등에 관한 시무책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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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이 『주례』에 근거해 관직제 등에 관한 시무책을 올리다

浚又率同列, 條陳時務曰, “謹按周禮天官, 冡宰以卿一人, 掌邦之六典, 以佐王治邦國, 其司徒以下, 各以其職聽屬焉, 而六卿之屬, 又有三百六十. 是則三百六十之屬, 統於六卿, 而六卿又統於冡宰也. 官職之增損, 名義之沿革, 代有不同, 大義不出乎此六部也. 洪惟, 我太祖開國之初, 設官分職, 置宰相以統六部, 置監·寺·倉庫以承六部, 甚盛制也. 法久而弊, 爲典理者不知選擧, 而流品濫, 爲軍簿者不典兵額, 而武備弛. 至於戶口之盈縮, 錢穀之多寡, 獄訟之無章, 盜賊之不理, 爲版圖典法者, 漫不知爲何事. 禮儀之禮, 典工之工, 果能各擧其職乎? 盖六部百官之本, 而政事之所出也, 本亂而末治者, 未之有也. 於是, 百僚庶司, 渙散無統, 不務庶績, 名存而實亡. 雖君相憂勤, 而政事之修擧, 其亦難矣. 臣等願, 以六典之事, 歸之六部, 以各司分屬乎六部. 宰臣自侍中已下, 以次判司事, 密直又以次兼判書, 提綱於上. 以奉翊爲六部判書, 領諸郞及所屬攸司, 各以其職, 聽命於下. 大事則六部郞, 小事則六色掌, 以時奉承行移. 如是則簡以制繁, 卑以聽尊, 上下相維, 大小相統, 如綱擧而目張, 領挈而裘順. 君相優游於上, 而百職奔走於下, 敎令易行, 政事易擧也. 人主之職, 論相而已, 宰相之職, 進君子, 退小人, 以正百官而已. 相得其人, 則天下理矣, 况一國之政乎? 周·召·太公, 文·武·成·康之相也, 蕭·曹·房·杜, 漢祖·唐宗之相也. 本朝之制, 中書則曰令·曰侍中·曰平章·曰叅政·曰政堂. 五者法天之五星也, 樞密之七, 則法天之北斗也. 宰臣·樞密之合坐, 始於事元之初, 至于近代, 坐都堂與國政者, 至六七十人, 官職之濫, 古未有也. 願自今, 非論道經邦, 燮理陰陽, 正己以正百官者, 非淸白忠直, 疾惡好賢, 國爾忘家者, 非戰勝攻取, 勇冠三軍, 威加殊俗者, 不許兩府. 漢之光武, 以天下之廣四海之富, 減損吏員, 十置其一, 以致中興之理. 凡不急之官, 雜冗之吏, 一皆汰去, 以復祖宗代天設官之成憲, 以示盛朝惟新之化. 六寺七監, 本無判事, 近來又階通憲·奉翊, 不親視事, 曠官廢職, 坐費天祿. 願自今, 陞通憲·奉翊之階者, 如有材幹者, 降其階使親其職, 新授者, 不許階奉翊·通憲. 春秋書, ‘天王使仍叔之子來聘.’ 夫子盖傷夫周家, 以父兄之故, 官其幼弱之子弟, 尸天祿而曠天工也. 我文廟三十有八年之理, 蔚有太平之盛者, 以其所用, 皆老成之人也. 願自今, 公卿士大夫幼弱子弟, 不許拜東班, 九品以上官, 其有冒受者, 罪其父兄.

糾正職, 察百官, 爲人主之耳目. 凡祭祀朝會, 以至錢穀出納, 悉皆監檢, 秩卑而責重. 願自今, 令臺諫薦擧, 以授其職, 陞其秩於正言之次, 以振紀綱. 守令近民之職, 不可不重. 近日所除守令, 頗有士林所不知者. 願自今, 非經顯秩有名望者, 非歷試中外有聲績者, 不許除授. 其田獵宴飮之事, 一皆痛禁. 監務·縣令職又近民, 近世仕出多門, 人恥爲之. 乃以府史·胥吏, 不學墻面之輩, 以毒于民. 願自今, 以臺諫·六曹所擧有才幹者遣之, 陞階叅官, 以重其任. 諸安集一切罷之, 其府史·胥吏之徒, 只除權務之職. 其公私奴隷·州驛吏·工商雜類, 冒受官職者, 請許憲司不論官品, 皆奪其職. 供驛署專掌八道之驛, 近年不坐公廳而在私家, 行移文牒. 凡以權勢豪强之托, 親戚朋友之請, 乘馹騎而率郵吏者, 絡繹不絶, 驛卒凋殘, 職此之由. 願自今, 以供驛署屬軍簿司, 凡馬匹驛卒, 據都堂文字, 方許發遣.

司僕掌乘輿之馬政, 周之伯冏之任也. 親近左右, 其選最重, 近代別立內乘, 內豎之徒, 專擅其職. 日者, 縱暴尤甚, 其收蒭槀也, 劫奪萬端. 輸轉入城也, 農牛瘡仆, 殘破畿縣, 毒流諸郡. 一州之內, 穀草之價, 布幾至九百匹. 州郡皆是, 而又驅其貢戶, 名爲驅史, 至千百人. 不付公籍, 私置農莊, 而役使之, 若奴隷然, 害民病國, 甚可哀痛. 願自今, 以尙乘屬之司僕寺, 不許內豎除授, 謹擇廉幹者任之, 更日入直. 凡其蒭豆, 身親量給, 畿內蒭槀, 計馬定數, 分月而供, 且使糾正監檢. 每一番, 置獸醫五人, 驅史三十人, 餘皆罷之, 屬之府兵. 凡都監有事則置, 無事則罷, 例也. 造成都監, 初因宮闕之作而置, 後以繕工之職歸之, 使管一國材鐵之用. 遣官吏而煩驛騎, 竭民財而盡其力. 一木之曳, 至斃十牛, 一爐之冶, 至廢十農, 一束之麻一把之葛, 至費十布. 取之於民也, 剝膚槌髓, 用之於私也, 如泥如沙. 願罷都監, 屬繕工寺, 幷罷防禦·火桶都監, 屬之軍器寺, 愼揀廉正者官之, 且使糾正監檢. 以壼串宮闕之材瓦, 被罪籍沒之居室, 兩江之材, 諸窰之瓦, 供諸營造. 凡斫木陶瓦之役, 且停三年, 以休民力. 都城根本之地, 風化之所先, 其民衛王室而已. 近來敎養無法, 奸詐相習, 力役煩重, 日就凋弊. 願罷都摠都監, 將五部屬之開城府. 每一里, 擇耆老有學者爲社長, 依黨序之法, 敎養子弟. 其賤人及工商子弟, 各事所業, 毋使群戲街巷以長浮薄之風, 違者罪社長及父兄. 其都官·宮司·倉庫奴婢, 及近日誅流人祖業新得奴婢, 令辨正都監, 皆計口成籍, 毋使遺漏. 每有土木營繕之役, 賓客佛神之供, 皆以役之. 其於坊里雜役, 一皆除去, 以安其生, 以衛王室. 李仁任專擅威福, 踰二十年, 罪盈惡積, 幸天殛之. 願削官爵, 不賜謚誄, 以懲爲惡之人. 貞烈公慶復興淸白自守, 爲仁任等所逐, 卒於貶所. 願賜敎書, 弔祭其墓. 侍中李子松廉謹守節, 死非其罪, 國人惜之. 願賜謚誄, 厚恤其家.

祖宗衣冠禮樂, 悉遵唐制, 迨至元朝, 壓於時王之制, 變華從戎, 上下不辨, 民志不定. 我玄陵憤上下之無等, 赫然有志於用夏變夷, 追復祖宗之盛. 上表天朝, 請革胡服, 未幾上賓. 上王繼志得請, 中爲執政所改. 殿下卽位, 親服華制, 與一國臣民, 渙然更始, 而尙猶不順其品制, 以梗惟新之政. 願令憲司, 定日立法, 其不從令者, 一皆糾理. 近年, 奸凶相次執政, 隨賄厚薄, 高下其官, 視其從違, 殺活其人. 士風一變, 朝夕奔走於權門, 虛曠天工. 願令攸司, 各以斷獄決訟之事, 當兩衙日上之, 各司日坐本司視事, 其有奔走權門, 不供其職者, 停職徵祿. 刑無定法, 內外官司, 出入由己. 今典校一官, 皆文學之臣, 無他所掌. 願委刪定刑書, 以惠萬世. 又中外官司, 相接之節, 文書相通之格, 亦使刪定頒行.

古者, 風淳俗厚, 詐僞不生, 百官謝牒, 堂後官署之. 世道日降, 奸詐日滋, 近來上將軍已下, 令軍簿司印之, 奉翊已下, 典理司印之, 防詐冒也. 今都評議使移文中外官司者, 皆出納錢穀, 殺生威福, 發號施令等事, 所係至重, 而使一錄事署名, 非通變防奸之道也. 願依印朝謝之例, 凡都堂文牒, 必令印之. 舊制, 下王牌於諸倉庫宮司, 必印以行信寶, 今內豎獨署其名, 亦非所以防奸也. 願凡所內用, 令都評議使供之, 毋下王牌, 以塞內豎盜竊之源. 士大夫於聽訟決事之官出納錢穀之司, 交通私書, 顚倒是非, 耗竊官物, 其弊彌甚, 願一切禁止. 如有違者, 其請與聽者, 以不廉論. 各司·各成衆愛馬之求索, 外官之贈遺, 一切禁止, 如有違者, 亦以不廉論. 古者, 民年十六爲丁, 始服國役, 六十爲老而免役. 州郡每歲計口籍民, 貢于按廉, 按廉貢于戶部, 朝廷之徵兵調役, 如指諸掌. 近來此法一毁, 守令不知其州之戶口, 按廉不知一道之戶口, 當徵兵調役之際, 而鄕吏欺蔽, 招納賄賂. 富壯免而貧弱行, 貧弱之戶不堪其苦而逃, 則富壯之戶代受其苦, 亦貧弱而逃矣. 其任徵發者, 憤鄕吏之欺蔽, 痛加酷刑, 割耳劓鼻, 無所不至, 鄕吏亦不堪其苦而逃矣. 鄕吏百姓流亡四散, 州郡空虛者, 戶口不籍之流禍也. 願今當量田, 審其所耕之田, 以田多寡, 籍其戶爲上中下, 又戶分良賤, 守令貢于按廉, 按廉貢于版圖. 朝廷凡徵兵調役, 有所憑依, 及時發遣. 而守令·按廉, 如有違者, 輒繩以理.

諸道魚鹽·畜牧之蕃, 國家之不可無者也. 我神聖之未平新羅·百濟也, 先治水軍, 親駕樓船, 下錦城而有之. 諸島之利, 皆屬國家, 資其財力, 遂一三韓. 自鴨綠以南, 大扺皆山, 肥膏之田, 在於濱海. 沃野數千里, 陷于倭奴, 蒹葭際天. 國家旣失魚鹽·畜牧之利, 又失沃野良田之入. 願用漢氏募民實塞下防凶奴故事, 許於亡邑荒地開墾者, 限二十年, 不稅其田, 不役其民. 專屬水軍萬戶府, 修立城堡, 屯聚老弱. 遠斥候, 謹烽火. 居無事時, 耕耘·魚鹽·鑄冶而食, 以時造船. 寇至, 淸野入堡, 而水軍擊之. 自合浦以至義州皆如此, 則不出數年, 流亡盡還鄕邑, 而邊境州郡旣實, 諸島漸次而充. 戰艦多而水軍習, 海寇遁而邊郡寧, 漕轉易而倉廩實矣. 水軍萬戶·諸道元帥, 能置屯田, 修戰艦, 結人心, 施號令, 滅賊安邊者, 賜之島田, 世食其入, 傳之子孫. 其失一城堡, 亡一州郡者, 處以軍法, 毋得輕宥, 以示勸懲.

全羅·慶尙·楊廣三道, 貢賦之所出, 國家之腹心也. 今倭奴橫行, 攻陷我州郡, 蹂踐我禾稼, 殺戮我老弱, 奴婢我丁壯. 而擁旌節者, 嬰城竄伏, 莫有鬪志, 賊勢日熾. 願令大擧, 及時掃淸. 西北一面, 國之藩屛. 頃者, 奸兇擅國, 廣置私人, 元帥·萬戶, 加於舊額. 州郡供額不貲, 民不堪命, 相與流亡. 願自今, 擇文武兼備, 威望夙著者, 每一道, 元帥一人, 上·副萬戶各二人, 餘皆罷之. 商賈之徒, 競托權門, 以干千戶之任, 侵漁掊克, 靡所不至. 願自今, 令其道元帥, 擇威惠爲民服信者, 除授之, 毋數易置. 權勢之家, 競爲互市, 貂皮·松子·人參·蜂蜜·黃蠟·米豆之類, 無不徵歛. 民甚苦之, 扶老携幼, 渡江而西, 可爲痛哭. 願自今, 抑買者一切禁止, 如有違者, 痛繩以法. 前此, 被罪奸兇之徒, 抑買之貨, 其在民閒未畢收者, 宜令刷括, 以充官用. 其鷹鷂·貂皮之曲獻, 乞皆痛禁. 禾尺·才人, 不事耕種, 坐食民租, 無恒産而無恒心, 相聚山谷, 詐稱倭賊. 其勢可畏, 不可不早圖之. 願自今, 所居州郡, 課其生口, 以成其籍. 使不得流移, 授以曠地, 俾勤耕種, 與平民同. 其有違者, 所在官司, 繩之以法.” 昌下其書都堂.


색인어

이름浚,太祖,周,召,太公,文,武,成,康,蕭,曹,房,杜,光武,夫子,文廟,安集,貞烈公,慶復興,仁任,李子松,玄陵,神聖,昌


지명開城府,錦城,鴨綠,合浦,義州,全羅,慶尙,楊廣,西北一面


관직侍中,判司事,密直,判書,判書,侍中,平章,叅政,政堂,判事,正言,監務,縣令,侍中,上將軍,成衆愛馬,按廉,按廉,按廉,按廉,按廉,按廉,萬戶,元帥,元帥,萬戶,元帥,上·副萬戶,千戶,元帥


서명周禮,天官,春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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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이 『주례』에 근거해 관직제 등에 관한 시무책을 올리다

조준(趙浚)이 또 동료들을 이끌고 시무책(時務策)을 조목별로 아뢰기를, “삼가 『주례(周禮)』의 「천관(天官)」을 살펴보건대, 총재(冢宰)는 6경(卿) 중에서 한 명으로 하여 나라의 육전(六典)을 관장하며 왕의 정치를 도우면서 나라를 다스렸고, 사도(司徒) 이하는 각자 직(職)에 따라 총재에 예속되었으며, 6경의 속관이 또 360명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360명의 관속이 6경에게 통솔(統率)되고 또 6경은 총재에게 통솔되었습니다. 관직의 증감과 명의(名義)의 연혁은 시대에 따라 같지 않았으나, 대체로는 6부(部)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넓게 생각하건대 우리 태조(太祖)께서 나라를 여신 처음에 관직을 설치하여 직책을 나누면서 재상(宰相)을 두어 6부를 다스리고 감(監)·시(寺)·창(倉)·고(庫)를 두어서 6부에 나누어 둔 것은 아주 훌륭한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법이 오래되니 폐단이 생겨 인사행정[典理]을 맡은 자가 사람을 선발하는 법을 알지 못하니 유품(流品)이 남발되었고, 군사행정[軍簿]을 맡은 자가 병액(兵額)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니 무비(武備)가 해이해지게 되었습니다. 호구(戶口)의 증감, 전곡(錢穀)의 다과(多寡), 옥송(獄訟)의 무절제함, 도적의 창궐 등에 대해 판도사(版圖司)와 전법사(典法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의사(禮儀司)의 예관(禮官)과 전공사(典工司)의 공관(工官)들은 과연 각자 맡은 그 직무를 해내고 있습니까? 대개 6부는 백관의 근본이고 정사(政事)가 나오는 곳입니다. 근본이 어지러운데 말단이 다스려진 일은 있지 않았습니다. 이에 백관(百官)과 여러 관청들이 매우 산만해져서 통제가 되지 않고, 실적을 위해 힘쓰지 않아서 이름은 남아도 실체는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왕과 재상이 근심하여 부지런히 일해도 정사가 잘 다스려져서 좋은 성과를 올리기는 또한 어려울 것입니다. 신(臣) 등은 6전(典)의 일은 6부에 귀속시키고 각 사(司)는 6부에 나누어 소속시킬 것을 바라옵니다. 재신(宰臣)은 시중(侍中) 이하로는 차례대로 판사사(判司事), 밀직(密直)을 두고 또 차례로 판서(判書)를 겸하게 함으로써 위로부터의 기강을 잘 잡도록 해야 합니다. 봉익(奉翊)을 6부의 판서로 삼아 여러 낭관(郎官)과 소속 관청을 다스리도록 하고 각자의 직무에 따라 아래에서는 명령을 듣게 해야 합니다. 큰일은 6부의 낭관이, 작은 일은 6색장(色掌)이 때에 따라 명령을 받들어 공문을 보내게[行移] 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면 번잡한 일들이 간단해질 것이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말을 듣게 되어 위아래가 서로 연결되고 크고 작은 일들이 서로 통일되어 그물을 들면 그물코가 늘어나고 옷깃을 당기면 옷이 펴지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 왕과 재상이 위에서 한가롭게 있어도 백관들이 아래에서 분주히 일하므로 명령이 쉽게 행해지고 정사도 쉽게 거행될 것입니다. 임금[人主]의 직무는 재상들과 논의할 뿐이고, 재상의 직무는 군자(君子)를 등용하고 소인(小人)을 물리쳐서 백관을 바로잡을 뿐입니다. 재상으로 그 〈적합한〉 사람을 얻으면 천하가 다스려졌는데, 하물며 한 나라의 정치이겠습니까? 주공(周公)·소공(召公)·태공(太公)은 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강왕(康王)의 재상들이고, 소하(蕭何)·조참(曹參)·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는 한(漢) 고조(高祖)와 당(唐) 태종(太宗)의 재상들입니다. 본조(本朝)의 제도에는 중서성(中書省)에는 영(令)·시중(侍中)·평장(平章)·참정(參政)·정당(政堂)이라는 것들이 있는데 이 다섯 관직은 하늘의 5성(星)을 본받은 것이고, 추밀(樞密)의 일곱 관직은 하늘의 북두칠성을 본받은 것입니다. 재신(宰臣)과 추밀이 합좌(合坐)하는 것은 원(元)을 섬기게 된 초기부터 시작되었으나 요즘에 이르러 도당(都堂)에 앉아 국정(國政)에 참여하는 자가 60~70명이나 되니 관직이 이처럼 넘쳐나는 것은 예전에 있지 않았던 일입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도(道)를 논하여 나라를 다스리고[論道經邦] 음양(陰陽)을 조화시켜 자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백관을 바로잡는 자가 아니거나, 깨끗하고 충직하여 악인(惡人)을 미워하고 어진 이를 좋아하며 나라만을 생각하여 자기 집안을 잊는 자가 아니거나, 전투에서 승리하여 〈적진(敵陣)을〉 쳐서 얻고 용맹함이 3군(軍)에서 으뜸이 되며 먼 곳까지 위엄을 떨친 자가 아니라면, 양부(兩府)에 두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옵소서.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는 천하의 넓은 땅과 사해(四海)의 많은 부(富)를 가졌으면서도 관리의 정원을 줄여서 10명 중 1명만을 둠으로써 중흥(中興)의 치세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무릇 급하지 않거나 잡스럽고 쓸모없는 관리는 모두 없앰으로써 역대 왕들께서 하늘을 대신하여 관직을 설치한 성헌(成憲)을 회복하여 〈지금〉 조정에 유신(維新)의 변화를 보이도록 하시옵소서. 6시(寺)와 7감(監)에는 본래 판사(判事)가 없었고, 근래에는 또 통헌(通憲)·봉익의 품계에 있는 자들은 직접 사무를 보지도 않으면서 관직만 비워둔 채로 녹봉[天祿]만 낭비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통헌·봉익의 품계에 오른 자로서 재간(才幹)이 있는 자라면 그 품계를 낮춰서 직접 사무를 보게 하고, 새로 제수(除授)하는 자에는 봉익·통헌의 품계를 주지 마시옵소서. 『춘추(春秋)』에는 ‘천왕(天王)이 잉숙(仍叔)의 아들로 하여금 내빙(來聘)하게 하였다.’고 쓰여 있는데, 공자(孔子)께서 주(周) 왕실이 그 부형(父兄)의 연고로 유약(幼弱)한 자제(子弟)에게까지 관직을 주어 녹봉을 허비하고 하늘이 내린 관직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고 아파하신 말입니다. 우리 문종(文宗)께옵서는 38년을 다스리면서 태평성대를 이루셨는데 그것은 등용된 사람들이 모두 노성(老成)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공경(公卿) 사대부(士大夫)의 유약한 자제를 동반(東班) 9품 이상의 관직에 임명하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고, 만약 멋대로 관직을 받은 자가 있으면 그 부형(父兄)에게 죄를 주시옵소서.

규정(糾正)의 직무는 백관을 감찰하여 왕의 눈과 귀가 되는 것입니다. 제사(祭祀)와 조회(朝會)에서 전곡의 출납(出納)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감독하고 검사해야 하니 직질(職秩)은 낮지만 책임은 중합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대간(臺諫)의 천거에 의해 그 관직을 제수하시고 그 질(秩)을 정언(正言)의 다음으로 올려서 기강을 진작하시옵소서. 수령(守令)은 백성을 가까이 하는 직무이니 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제수된 수령 중에는 자못 사림(士林)이 알지 못하는 자도 있으니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높은 관직을 지내 명망이 있는 자가 아니거나, 과거를 거쳐 온 나라에 명성과 업적을 떨친 자가 아니라면 〈수령직의〉 제수를 허락하지 마시옵소서. 그들이 사냥을 나가거나 연회를 여는 일도 모두 엄히 금지하여 주시옵소서. 감무(監務)·현령(縣令)의 직무 또한 백성을 가까이 하는 것인데, 요즘에는 임용되는 길이 많아져서 사람들이 〈그러한 직을〉 맡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부사(府史)·서리(胥吏)로서 배움과는 담을 쌓은 무식한 자들이 임용되어 백성에게 해독을 끼치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대간·6조(曹)에서 천거한 재간이 있는 사람들을 파견하시고 참관(叅官)으로 품계를 올려서 그 직임(職任)을 중히 하시옵소서. 여러 안집별감[安集]은 일체 혁파하시고 부사·서리의 무리들은 단지 권무직(權務職)에만 제수하도록 하시옵소서. 공사노예(公私奴隷)·주리(州吏)와 역리(驛吏)·공상잡류(工商雜類)로서 관직을 함부로 받은 자는 청컨대 헌사(憲司)에서 관품(官品)을 논하지 말고 모두 그 관직을 빼앗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공역서(供驛署)는 오로지 8도(道)의 역(驛)을 관장하는 관청인데, 최근 몇 년간 〈그 관리들이〉 관청에서 근무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공문[文牒]을 보내고 있습니다. 권세(權勢)가 있거나 호강(豪强)한 자들의 청탁이나 친척과 벗들의 요청을 받고 역마(驛馬)를 마음대로 이용하면서 역리[郵吏]를 부리는 자가 끊임없이 오가니 역졸(驛卒)이 피로에 지쳐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공역서를 군부사(軍簿司)에 속하게 하여 모든 마필(馬匹)과 역졸은 도당의 문자(文字)에 의해서만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복시(司僕寺)는 전하의 수레와 말을 관장하므로, 주의 백경(伯冏)과 같은 임무이옵니다. 〈전하의〉 좌우에서 친근(親近)하므로 그 선발이 가장 중요한데 요즈음 따로 내승(內乘)을 설치하여 내수(內竪)의 무리들이 그 직무를 제멋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요사이 횡포가 더욱 심해져 〈말이 먹을〉 꼴[蒭槀]을 거둠에 온갖 방법으로 협박하는 형편입니다. 〈그것을〉 도성(都城) 안으로 운반하느라 농우(農牛)가 상처를 입고 쓰러지니 기내(畿內) 고을들은 매우 피폐해졌고, 그 해독이 여러 고을로 퍼지고 있습니다. 한 주(州)에서 바쳐야 할 〈말 먹이용〉 곡식과 풀의 가격이 베[布]로 따져서 거의 9백 필(匹)에 이릅니다. 주군(州郡)이 모두 이러한 형편인데, 또 공호(貢戶)를 부려먹으면서 구사(驅史)라 이름 붙인 이들이 1,000명, 100명에 이릅니다. 공적(公籍)에 등록하지 않고 사사로이 농장(農莊)에 두어 사역(使役)하기를 노예처럼 하고 있으니 민(民)을 해치고 나라를 병들게 하므로 참으로 애통합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상승(尙乘)을 사복시에 소속시켜서 내수의 제수를 허락하지 마시고 청렴하고 재간이 있는 자를 신중하게 골라서 일을 맡기시고 날을 번갈아 입직(入直)하게 하시옵소서. 〈말 먹이로 쓸〉 꼴과 콩은 자신이 직접 양을 재어 공급하고 기내(畿內)에서 나는 꼴은 말의 정수(定數)를 계산하여 매달 나누어 바치게 하고 또한 규정(規定)을 시켜서 감독하고 검사하게 하시옵소서. 〈입직하는〉 번(番) 하나마다 수의(獸醫) 5명과 구사 30명을 두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혁파하여 부병(府兵)에 소속시키도록 하시옵소서. 무릇 도감(都監)이란 일이 있으면 두고 일이 없으면 없애는 것이 예(例)입니다. 조성도감(造成都監)은 처음 궁궐을 짓기 위해 설치했던 것인데 나중에는 선공(繕工)의 직무까지 귀속시켜서 나라 전체의 목재와 철의 쓰임새를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파견한 관리들이 역마를 번다하게 사용하며 민들의 재물과 힘을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나무 1개를 끄는 데 소 10마리를 죽이기까지 하고, 1개의 용광로에서 쇠를 제련하는데 10집의 농사를 못 짓게까지 하며, 1속(束)의 삼[麻]과 1파(把)의 거친 베[葛]를 마련하느라 10필의 베를 쓰게 만들기까지 합니다. 백성들에게서 그것을 빼앗을 때에는 거죽을 벗기고 뼈를 두드려 골수(骨髓)를 빼듯이[剝膚槌髓] 혹독히 하지만 사사로이 쓸 때는 진흙이나 모래처럼 〈허투루〉 여깁니다. 바라옵건대 〈조성〉도감을 없애서 선공시(繕工寺)에 소속시키고 방어(防禦)·화통도감(火桶都監)도 아울러 없애서 군기시(軍器寺)에 소속시킨 후에 청렴하고 정직한 자를 신중히 가려서 관직을 주고 또한 규정을 시켜 감독하고 검사하도록 하시옵소서. 호곶[壺串]에 궁궐을 짓는 데 필요한 목재와 기와는 죄를 지어 적몰(籍沒)된 집과 양강(兩江)의 목재, 여러 가마의 기와로 영조(營造)에 공급하시옵소서. 무릇 나무를 벌채하고 기와를 굽는 일도 3년 동안 그만두어 민들을 쉬게 하시옵소서. 도성은 〈나라의〉 근본이 되는 땅이라 교화가 먼저 이루어지는 곳이고, 그 곳의 백성들은 왕실을 지킬 따름입니다. 근래에 〈도성의 백성들을〉 교양(敎養)하는 일에 법도가 없어 간악하게 속이는 것을 서로 익히게 되었고 역역(力役)이 번잡하고 과중해서 날이 갈수록 삶이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도총도감(都摠都監)을 혁파하고 5부를 개성부(開城府)에 소속시키옵소서. 1리(里)마다 기로(耆老) 중에 학식 있는 자를 택하여 사장(社長)으로 삼아 지방에 학교를 세우는 법식[黨序之法]에 의하여 자제를 가르치게 하시옵소서. 그 가운데 천인(賤人) 및 공장(工匠)과 상인의 자제는 각자의 직업에 종사하게 하여 무리 지어 다니면서 거리에서 장난질함으로써 천박한 풍습을 조장하지 말도록 하며, 이를 어길 경우 사장과 부형에게 죄를 주시옵소서. 도관(都官)·궁사(宮司)·창고(倉庫)의 노비(奴婢) 및 최근 사형을 당하거나 유배된 자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가 새로 몰수된 노비의 경우, 변정도감(辨正都監)에 명령하여 사람[口] 수를 모두 계산하여 문서를 만들어 누락되는 일이 없게 하고, 토목(土木) 영선(營繕)의 역이 있거나 빈객(賓客)이나 불신(佛神)의 접대가 있을 때마다 모두 그들에게 일을 시키시옵소서. 방리(坊里)의 잡역(雜役)은 일체 없애서 그들의 삶을 편안하게 하여 왕실을 잘 호위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이인임(李仁任)이 제멋대로 위복을 휘두르기를 20년 넘게 하면서 온갖 죄악을 저질렀는데 다행히도 하늘이 그를 죽였습니다. 바라옵건대 그 관작(官爵)을 삭탈하고 시호(諡號)와 뇌사(誄辭)를 내리지 않음으로써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징계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정렬공(貞烈公) 경복흥(慶復興)은 청렴결백함을 스스로 지키다가 이인임 등에게 쫓겨나 유배지[貶所]에서 죽었습니다. 바라옵건대 교서(敎書)를 내려 그 무덤에 조문하고 제사를 지내주시옵소서. 시중 이자송(李子松)은 청렴하고 매사에 삼가며 충절을 지켰으나 죄가 없는데도 죽었기에 나라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깁니다. 바라옵건대 시호와 뇌사를 내리시어 그의 집안을 후하게 보살펴 주시옵소서.

조종(祖宗)의 의관(衣冠)과 예악(禮樂)은 모두 당제(唐制)를 따랐는데, 원조(元朝)에 이르러 시왕지제(時王之制)에 압박을 받아서 중화(中華)〈의 제도〉를 바꿔 오랑캐를 따르게 되었으니 상하(上下)가 분별되지 않아 민의 뜻이 안정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현릉(玄陵, 공민왕)께서는 상하의 등급이 없는 것을 분하게 여기시어 중화로써 오랑캐를 변화시키고[用夏變夷] 조종의 성대한 제도를 다시 회복하려는 큰 뜻을 세웠습니다. 명(明)[天朝]에 표문을 올려 호복(胡服)을 혁파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공민왕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상왕(上王, 우왕)께서 그 뜻을 계승하여 요청할 수 있었지만 중간에 집정(執政)이 바꿔 버렸습니다. 전하(殿下)께서 즉위하셔서 친히 중화의 제도를 따라 온 나라의 신민(臣民)과 더불어 환연히 다시 출발하였으나, 여전히 그 품제(品制)를 따르지 않으면서 유신(惟新)의 정치를 가로막는 자가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헌사에 명령하셔서 날을 정하여 입법(立法)하게 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가려내어 처리하도록 하시옵소서. 근년에 간악하여 흉악한 자들이 번갈이 정권(政權)을 잡고서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높거나 낮은 관직을 주었고, 자신에게 빌붙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사람을 죽이거나 살렸습니다. 사풍(士風)이 한순간에 변하여 아침저녁으로 권문(權門)을 분주하게 쫓아다니면서 자기 직무[天工]를 비워놓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해당 관청[攸司]에 분부하셔서 각각 옥송(獄訟)의 일을 결단하는 것을 양아일(兩衙日)에 〈전하께〉 올리도록 하시고, 각 사(司)의 관리들은 날마다 본사(本司)에서 일을 보게 하고, 그 중 권문을 분주히 쫓아다니느라 자신의 직무를 이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관직을 정지시키고 녹봉을 거두게 하시옵소서. 형벌에 정해진 법이 없어서 안팎의 관사(官司)에서는 마음대로 처리하는 형편입니다. 지금 전교(典校)의 관리들은 모두 문학(文學)을 하는 신하들인데 달리 맡은 바가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형서(刑書)를 정리하여 다듬는 일을 맡겨서 만세(萬世)에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또한 중앙과 지방의 관사가 서로 접하는 절차와 문서를 주고받는 격식도 또한 정리하여 정하여 반포 시행하도록 하시옵소서.

옛날에는 풍속(風俗)이 순후(淳厚)하여 속이거나 위조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백관의 사첩(謝牒)에 당후관(堂後官)이 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도리가 점점 나빠지고 간악한 속임수들이 나날이 늘어나자 근래에는 상장군(上將軍) 이하에 대해서는 군부사에 명하여 도장을 찍게 하고 봉익 이하는 전리사(典理司)에서 도장을 찍게 했으니, 이는 속임수와 위조를 막으려는 것입니다. 지금 도평의사(都評議使)가 중앙과 지방의 관사에 보내는 문서들은 모두 전곡의 출납, 인명의 살생과 상벌(賞罰), 명령을 시행하는 등에 대한 일이므로 관계되는 바가 매우 중요합니다만, 일개 녹사(錄事)로 하여금 서명하게 하니 융통성 있게 간악한 짓을 막는 방법이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조사(朝謝)에 도장을 찍는 예에 의거하여 모든 도당의 문첩(文牒)에는 반드시 도장을 찍게 하시옵소서. 옛 제도에서는 왕패(王牌)를 여러 창고와 궁사(宮司)에 내릴 때에 반드시 행보(行寶)와 신보(信寶)를 찍게 하였는데, 지금은 내수가 홀로 서명하게 하니 이 또한 간사한 짓을 막는 방법이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궁궐 안에서 쓰는 모든 것은 도평의사로 하여금 공급하게 하고 왕패를 내리지 말아서 내수들이 도둑질을 하는 근원을 아예 막으시옵소서. 사대부(士大夫)들이 소송을 결단하는 관리와 전곡을 출납하는 관사에 사사로운 서신(書信)을 주고받으면서 옳고 그름을 뒤바꾸어 관물(官物)을 함부로 훔쳐내니 그 폐단이 더욱 심하므로, 바라옵건대 일체 금지시켜 주시옵소서. 만일 어기는 자가 있으면 청탁한 자와 들어준 자 모두를 청렴하지 못한 죄로 다스려 주시옵소서. 각 사(司) 및 성중애마(成衆愛馬)가 물품을 요구하는 행위나 외관(外官)들이 물건을 주는 일을 일체 금지시키고, 만약 어기는 자가 있으면 또한 청렴하지 못한 죄로 다스려 주시옵소서. 옛날에는 민의 나이가 16세이면 정(丁)이 되어 비로소 국역(國役)에 복무하였고, 60세면 늙었다 하여 역을 면제시켜 주었습니다. 주군에서 매 해 인구를 조사하고 호적(戶籍)을 작성하여 안렴사(按廉使)에게 올리고 안렴사는 호부(戶部)에 올려서 조정(朝廷)이 군사를 징발하고 역에 복무하게 하는 일이 손바닥을 가리키듯이 매우 분명했습니다. 근래에는 이 법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니 수령이 자기 주의 호구를 알지 못하고 안렴사도 자기 도의 호구를 알지 못하니, 군사를 뽑고 역을 징발하는 때가 되면 향리(鄕吏)가 속이고 은폐하면서 뇌물을 받아들입니다. 부유하고 건장한 자는 면제받는 반면 가난하고 약한 자만 뽑히게 되므로, 가난하고 약한 집에서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달아나게 되고, 부유하고 건장한 집에서 대신 그 고통을 받게 되어 또한 가난하고 약해져서 달아나게 됩니다. 징발을 맡은 자는 향리의 기만과 은폐를 분하게 여겨서 혹독한 형벌을 가하는데 귀를 베고 코를 깎는 등 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므로, 향리도 또한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달아나 버립니다. 향리와 백성(百姓)이 사방으로 유망(流亡)하고 주군이 텅텅 비는 것은 호구가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데서 온 재앙입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 양전(量田)하고 그 중 경작지를 조사하여 많고 적음에 따라 호적을 상·중·하로 만들고, 또한 양호(良戶)와 천호(賤戶)를 분류해서 수령이 안렴사에게 올리고 안렴사가 판도(版圖)에게 올리도록 하시옵소서. 조정에서 군사를 징집하고 역을 징발할 경우 근거할 것이 있으므로 때맞추어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수령과 안렴사 가운데 어기는 자가 있으면 바로 법으로 다스리옵소서.

여러 도의 어염(魚鹽)·목축(牧畜)의 생산을 늘리는 것은 국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 태조[神聖]께서 아직 신라(新羅)와 백제(百濟)를 평정하지 못하였을 때 먼저 수군(水軍)을 정비한 후 친히 누선(樓船)을 타고 금성(錦城)을 함락시켜 그곳을 차지하였습니다. 여러 섬의 이권(利權)이 모두 국가에 귀속되었고 그 재력을 의지하여 드디어 삼한(三韓)을 하나로 하시었습니다. 압록강(鴨綠江) 이남은 대저 모두 산인데, 비옥한 밭은 바닷가에 있습니다. 〈그러나〉 비옥한 평야 수천 리(里)가 왜구(倭寇)에게 함락되어 갈대만 무성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는 이미 어염·목축의 이익을 잃었고 또한 비옥한 들과 좋은 밭에서 나는 수입도 잃어버렸습니다. 바라옵건대 한(漢)에서 백성을 모아 변방을 채워 흉노(凶奴)를 막은 고사(故事)를 이용하여, 망한 고을의 황지(荒地)를 개간하는 자에게 20년 동안 그 밭에 세금을 매기지 말고 〈그 땅을 개간한〉 민들을 역에도 동원하지 마시옵소서. 오로지 수군만호부(水軍萬戶府)에 소속시켜서 성보(城堡)를 수리하거나 세우게 하고, 노약자들을 모아 살게 하시옵소서. 척후(斥候)들을 멀리 보내고 봉화(烽火)를 잘 살피도록 하시옵소서. 별다른 일이 없을 때에는 농사·어염·대장간 일로 먹고 살게 하고, 때로는 배를 만들어 두었다가 왜구가 오면 들판의 곡식을 태우고 성에 숨게 하고[淸野入堡], 수군이 왜구를 공격하게 해야 합니다. 합포(合浦)에서부터 의주(義州)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이 한다면,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유망한 민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와서 변경의 주군들이 채워지게 될 것이고 여러 섬에도 점차 사람들이 차게 될 것입니다. 전함(戰艦)이 많아지고 수군이 전술을 익히게 되면 해구(海寇)들이 달아나서 변방 고을은 평안해질 것이고, 조운(漕運)이 쉬워지면 창고[倉廩]가 넉넉해질 것입니다. 수군만호(水軍萬戶)와 여러 도의 원수(元帥)로서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전함을 수리하며 인심(人心)을 결집하고 군령(軍令)을 시행함으로써 적을 무찔러서 변방을 안정시킨 사람에게는 섬에 있는 밭을 하사해 대대로 그 수입으로 먹고 살게 하고 자손에게도 전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그 가운데 하나의 성보를 잃거나 하나의 주군이라도 망하게 한 자는 군법(軍法)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가벼이 용서하지 말도록 하여 잘한 것은 권장하고 잘못한 것은 징계하는 뜻[勸懲]을 보이시옵소서.

전라(全羅)·경상(慶尙)·양광(楊廣)의 3도는 공부(貢賦)가 나오므로 국가의 복심(腹心)입니다. 지금 왜구가 횡행(橫行)하여 우리의 주군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우리의 곡식을 마구 짓밟으며 우리의 노약자들을 살육하고 우리의 장정들을 노비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대를 지휘하는 자들[擁旌節者]이 성문을 닫은 채 숨어 엎드려서 싸우려는 뜻을 나타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적의 기세가 나날이 세지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군사를〉 대거 동원하여 때맞춰 소탕하여 없애버리옵소서. 서북(西北) 방면은 국가의 번병(藩屛)입니다. 요즈음 간흉(奸兇)들이 나라를 제멋대로 하여 곳곳에 사인(私人)을 배치하니 원수·만호가 예전 정원보다 더 늘었습니다. 주군에서 그들에게 제공해야 할 물자가 많아져서 민들이 감당하지 못하니 모두 유망하게 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문무(文武)를 모두 갖추고[文武兼備] 위엄과 명망을 일찍이 드러낸 자를 뽑아서 1도마다 원수 1명, 상만호(上萬戶)와 부만호(副萬戶) 각각 2명씩을 두고 나머지는 모두 혁파하여 주시옵소서. 장사꾼 무리들이 다투어 권문에 의탁하여 천호(千戶)에 임명되는 것을 구하여 갖은 수단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는 것이[侵漁] 이르지 않는 바가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각 도의 원수에 위엄과 은혜가 있어 백성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자를 가려 뽑아서 제수하시되 자주 바꾸지는 말아 주시옵소서. 권세지가(權勢之家)들이 다투어 무역[互市]을 하느라 초피(貂皮)·송자(松子)·인삼(人蔘)·봉밀(蜂蜜)·황랍(黃蠟)·미두(米豆) 같은 것들을 거두어들이지 않음이 없습니다. 민들이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노인과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가고 있으니, 참으로 통곡할 일입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민에게서〉 억지로 구매하는 일[抑買]은 일체 금지하고 만약 어기는 자가 있으면 엄격히 법에 따라 처벌해 주시옵소서. 이전에 죄를 지은 간악하고 흉포한 무리가 억지로 사들인 재화(財貨) 중에서 민간에 둔 채 아직 다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은 마땅히 다 쓸어 모아서 관용(官用)으로 충당해야 하옵니다. 특히 매와 새매·초피를 사사로이 바치는 일을 모두 엄격히 금지하여 주시옵소서. 화척(禾尺)·재인(才人)은 농사를 짓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민의 조(租)로 먹고 사는 자들로서, 일정한 생업[恒産]이 없으니 항심(恒心)도 없어서 산골짜기에 모여 살면서 왜적(倭賊)이라 거짓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그 세력은 두려워할 만하니,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거주하는 주군에서 그 〈화척과 재인들의〉 인구[生口]를 헤아려 호적을 작성하게 하시옵소서. 〈그들을〉 유이(流移)하지 않게 하고 빈 땅을 주어 농사에 힘쓰게 해서 평민(平民)과 같게 하시옵소서. 그 가운데 어기는 자가 있으면 소재지의 관사에서 엄히 법으로 다스리도록 하시옵소서.”라고 하니, 창왕(昌王)이 그 글을 도당에 내려 보냈다.

_고려사 > 卷一百十八 > 列傳 卷第三十一 > 諸臣 > 조준 > 조준이 『주례』에 근거해 관직제 등에 관한 시무책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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